Pages

Tuesday, June 16, 2020

[기자수첩] 학대 피해 아동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의 벽’ - 조선비즈

gugurbulu.blogspot.com
입력 2020.06.17 11:53 | 수정 2020.06.17 12:03

"이미 아이도 집으로 돌아왔는데 당신이 뭐라고 자꾸 전화하고 그래요?"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학대 피해 아동의 사후 관리를 위해 해당 가정에 전화를 걸면 이같은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라고 한다. 아동학대 사례 관리자는 "도저히 사후 모니터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아동학대 사례 관리자에게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강제로 떼어놓을 행정적 권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국 아동보호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 사례 관리자들은 1인 평균 64건의 사례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게는 혼자서 100건 이상을 담당하는 아동학대 사례 관리자도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하는 기준인 32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하는 굿네이버스가 제시한 기준인 20건에 비해 평균 두세 배 많은 수준이다.

이들의 업무는 과중하지만 행정적 권한은 거의 없다. 국내 대부분의 아동보호기관은 굿네이버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세이브더칠드런 등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되는 민간시설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아동 보호 업무를 맡는 사람들도 당연히 공적인 권한이 없는 ‘민간인’ 신분이다.

아동학대 신고를 접수받아 관리자가 현장 조사에 나선 후 학대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보호시설로 옮기는 것 외엔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현행 법 규정에는 이들이 학대 부모에게 상담이나 교육 등을 받도록 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학대 가해자인 부모가 기관으로부터 아이를 돌려달라고 요청하면 ‘원(原)가정 보호 원칙’에 따라 돌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권한이 없으니 가해 부모들의 저항도 거세다. 아동학대 사례 관리자는 신고 현장이나 전화 통화에서 "당신들이 뭔데"로 시작하는 폭언에 노출되기도 한다. 공무원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자체 조사 결과 아동학대 사례 관리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3.3년에 불과했다.

최근 천안·창녕 등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교육부와 지자체들은 아동학대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면서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런 1회성 대책들이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다.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 사례 관리사들의 인력 충원과 권한 확대가 필수적이다. 24시간 ‘핫라인’을 켜둔 채 신고 전화를 응대하면서 아동학대 사례 관리까지 맡고 있는 이들의 업무 환경이 개선돼야 아동학대 근절도 가능해진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지금도 죽기살기로 일하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교육부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8월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했다. 아동학대 사례 관리자들의 숨통이 트이는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나오길 바란다.

Let's block ads! (Why?)




June 16, 2020 at 07:53PM
https://ift.tt/3hunqKZ

[기자수첩] 학대 피해 아동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의 벽’ - 조선비즈

https://ift.tt/2XWAW2l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