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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ugust 1, 2020

“전세 빠르게 사라지며 세입자 보호 물거품된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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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들이 중개인에게 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7월31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전격 시행된 이후 첫 주말을 맞은 서울의 부동산중개소들은 집주인들이 걸어오는 전화를 응대하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중개업소에서 만난 중개인 전진희 씨는 중년 여성 2명과 상담을 하는 도중 빗발치는 문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전씨는 “개정안 시행 하루 전인 7월30일 밤 11시까지 전세 재계약을 진행했다”며 “당분간 집주인들의 문의 전화가 계속 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 월세 계약 기간을 4년(2+2년)간 보장하고, 전월세 인상 폭을 최대 5%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동산중개소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온 집주인들은 급작스런 개정안 시행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앞으로 4년간 전셋값을 올리지 못하는 것이 맞나“, ”전셋값을 올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나“, ”지금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방법은 없나“ 등을 물어봤다.

집주인 전화 문의 폭주, 세입자는 느긋


이에 반해 평소와 다름없이 느긋한 주말을 보내는 세임자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부동산중개소 옆을 지나던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당분간 집주인의 무리한 전셋값 인상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의 한 중개업소 중개인은 “당분간 전월세 상승폭이 둔화될 수 있다”며 “전셋값이 마구 뛰었던 지역에서는 이 제도의 시행을 반기는 세입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세입자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던 개정안의 효과가 어느 정도 주택 시장에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단기적이긴 하지만 기존 세입자의 주거안정, 주거비 완화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현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도 “개정법 시행 전 체결된 기존 임대차 계약에도 소급 적용되기 때문에 기존 세입자에게는 유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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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부동산중개소에 만난 집주인들과 전문가들은 “임대차보호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워낙 크기 때문에 세입자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2주택자 정모 씨는 “전세 보증금을 올려 받아 보유세를 충당하려던 차에 임대차 2법이 시행됐다”며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반전세로 주고 기존에 전세를 줬던 집에 내가 입주할까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2년이 지난 뒤에는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왕창 올릴 것”이라며 “이 정부는 집주인을 악덕 업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제도의 급격한 시행에 따라 불안감을 드러내는 세입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 전세로 사는 변모 씨는 “전세 재계약이 11월인데, 임대차 3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요 며칠 집주인한테 전화가 올까봐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우리 아파트 단지의 전셋값이 1~2억 올랐다”며 “이번 재계약은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2년 뒤에는 분명 전세금을 시세에 맞춰 올리거나 월세로 바꾸자고 할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고 말했다. 변씨는 “2년 뒤에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2~3억 오르려 하지 않겠느냐”며 “전세는 못 구하고 결국 월세 사는 신세가 되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서모 씨는 “세입자가 언제든 원하는 집을 고를 수 있어야 심리적 안정을 주는데 이제는 아예 갈 데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세를 2년 정도 살다가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이 계획이 무참히 짓밟혔다”고 말했다. 서씨는 “무주택자들의 상황을 너무 모르는 정치인들의 현실성 없는 대책에 놀아난 기분이다”고 말했다.
임대차보호법 시행된 첫날,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중개소. [지호영 기자]
“다주택자, 전월세 인상제한 피할 수 있어”

부동산업계에서는 이 제도의 허점이 노출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다주택자가 2년 단위로 실거주하는 집을 바꾸면서 전셋값을 마음대로 올릴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다. 이번에 도입된 ‘2+2’ 계약갱신청구권제 하에서도 집주인이 실거주할 경우에는 임차인을 2년 뒤 내보낼 수 있다. 따라서 집주인이 전월세 놓던 집으로 이사 들어오면서 기존에 살던 집을 높은 값에 전월세 내놓고, 또 2년 뒤 실거주하는 집을 바꿔 전월세 값을 올리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임대차 시장에서 지금껏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제도가 생기면서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고종완 원장은 “이 법 개정안은 주택 공급이 충분할 때 효과적인 제도다. 지금처럼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행되면 전세대란은 더욱 심화되고 이는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는 연쇄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집주인의 월세 선호에 따라 전세가 빠르게 사라질 것”이라면서 “앞으로 일어날 부동산 시장의 왜곡, 세입자와 집주인의 분쟁 증가에 대비한 보완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세 대신 월세 전환 가속화, 세입자도 불안

전세 시장에 양극화가 올 것으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세가가 8억~9억 선인 서울 강남 신축아파트의 경우에는 큰 변화가 없겠지만 서민층이 거주하는 중저가 주택의 경우에는 전세 대신 월세로 전환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중저가주택 소유주 가운데 임대소득자들은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하고 임대소득세를 낼 수 있다는 예상도 나욌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저금리로 위축됐던 전세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 교수는 “지금 당장은 주거안정 효과가 있겠지만 4년 뒤 폭등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주기적 폭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니 집수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고 이런 현상으로 지역에 따라 슬럼화 진행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 품귀와 가격 폭등에 따라 9억 이하 아파트 매매 시장이 달아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영광 대우건설 연구원은 “서울 강남구, 양천구, 노원구 등 학군 좋은 지역에서 전세 매물이 사라지면서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고 이들 지역의 9억 원 이하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살던 동네를 떠날 수 없는 이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전셋집을 구하거나, ‘주거 안정’을 위해 중저가 아파트를 매입하려 할 것이란 전망이다. 조 연구원은 “소형 평형, 소형 단지, 낡은 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한 9억 원 이하 아파트에 매수세가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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